제5코스 : 신라 천년 도읍지를 돌아

1.체험학습경로

[제5코스] 신라의 문화유산을 감상하는 길

낭산에서 선덕여왕과 불교에 관련된 많은 사실을 학습하면서 자연을 느껴 볼 수 있다. 또한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신라인들이 우리에게 남겨 주신 문화유산을 통해 독특한 문화적 자양분을 얻을 수 있다.


  • (13:00)화랑교육원⇒15 (13:45) 첨성대{30}⤳10 (14:05)계림{10}⤳5 (14:30)월성/석빙고{20}⤳15 (15:15)동궁과 월지{30}⤳5
  • (17:00)국립경주박물관{100}⇒ 10 (17:30)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20}⤳20 (17:50)화랑교육원

※ ‣ 도보 ⤳분 ‣ 차량 ⇒분 ‣ 유적지 내 체류 시간 { }

지도

 

1. 답사 개요

  • 경상북도산림환경연구원에서는 힐링을 얻도록 합니다. 낭산에서는 선덕여왕과 불교에 관련하여 많은 사실을 학습하면서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신라인들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문화유산을 통해서 독특한 문화적 자양분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게 합니다

 

2. 유의 사항

  • 도로를 횡단하거나 따라 걷는 경우가 있으므로 교통규칙을 잘 지키고, 안전에 유의하도록특히 주의합니다.
  • 점심과 물과 간식을 반드시 준비합니다.
  • 풀섶을 통과할 수도 있으므로 운동화에 긴바지를 착용합니다.
  • 유적 유물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하여 관찰합니다.
  • 의문은 인터넷이나 해설사를 이용하여 해결하도록 합니다.
  • 몸에 문제가 있을 때는 재빨리 인솔교사에게 말씀드려 해결을 합니다.
  • 발굴현장에서는 책임자의 허락을 받은 후에 관람합니다.

 

 

1. 경주 첨성대 - 국보 제31호  

첨성대

신라시대 천문을 관측하던 천문대(臺)로 알려져 있다. 석조 건축물로 높이는 9.5m이며 국보 제31호이다. 이 근방을 일반적으로 비두골 또는 비두거리 라고 하는데, 북두칠성에 다른 별을 비교해서 국가의 안위와 길흉화복을 점쳤다는 뜻이다.

구조면에서 살펴보면. 아래의 기단부, 병모양의 원통부, 다시 그 위의 정井자모양 돌로 된 정상부로 나눌 수 있다. 기단부 아래의 땅속에는 잡석과 받침돌, 그리고 기단부 서쪽으로는 일렬로 자연석이 놓여 있다. 이 기단부는 남쪽변이 정남에서 동쪽으로 19o정도 돌아가 있는데, 이 방향은 북두칠성을 바라보는 방향과 일치한다.

또 13단에서 15단에 걸쳐서 정남에서 동쪽으로 약 16。가 되는 방향을 향하여 한 변이 약 95cm되는 정사각형의 창구가 있다. 창구의 내부 아래쪽은 잡석으로 채워져 있으며, 그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 속이 비어 있는 형태이다.

19단과 20단, 25단과 26단에 동서남북으로 2개씩의 긴 돌[장대석]이 걸쳐 있어 정井자모양을 이루고 있다. 27단의 원통부위에는 각 네 개씩으로 짜여진 정자석이 두 단에 걸쳐 놓여 있어서 정상부는 사각형을 이룬다. 현재로서는 남쪽면이 정남에서 서쪽으로 약 8。 정도 돌아가 있다.

돌의 갯수는 종래 365개라고 하여 왔으나, 기단석까지를 포함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달라지므로 정확히 365개는 아니다. 1962년 12월 당시 국립경주박물관장이던 홍사준과 정영호, 유문룡 등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기단부를 제외한 1~27단까지가 362매, 지대석 8매, 기단석 12매, 상부 정자석 8매, 중간 정자석 8매, 남측 문기둥 2매, 27단의 판석 1매로서 도합 401매이다.

 

체험학습 과제

1

첨성대 사진을 찍고, 첨성대에 대하여 설명해보세요.

2

첨성대는 신라 제 36대 혜공왕(AD779년) 진도 6.7에 해당하는 지진과 6.25전쟁, 2016년 진도 5.8의 강한 지진에도 큰 피해 없이 보존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토론하고 설명해보세요.

3

첨성대는 천문관측에 사용되던 천문대인가, 아니면 하늘에 제사지내던 제단인가? 하나를 고르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기록하세요.

 

체험학습 과제

1

첨성대는 과연 하늘을 관측하는 천문대였을까 아니면 하늘에 제사지내는 용도의 건축물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용도가 있었을까에 대해서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해보세요.

2

오늘날 천문대는 소백산이나 보현산처럼 높은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천문대를 왜 산꼭대기에 세워야 하는지,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해보세요.

3

신라시대처럼 근대 이전의 천문대는 도시 가운데 아니면 궁궐 안에 있었습니다. 궁궐 안이나 가까이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해 보세요.

4

첨성대의 높이를 알아보고, 그렇게 낮아도 하늘을 관측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해 보세요.

5

조선시대에 하늘을 관측하던 곳은 어디에 남아있는지 알아보고, 그 명칭을 기록해 보세요.

6

신라시대 이후에 경주지역에는 수많은 지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첨성대는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서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해 보세요.

기수 문제번호 등록일

 

 

체험학습 과제

1

계림의 사진을 찍고, 느낌을 말해보세요.

2

계림 숲 속에 향가가 적혀 있는 비석이 있습니다. 향가의 제목과 내용에 대하여 설명해보세요.

3

계림에 얽힌 김알지의 탄생 설화에 대하여 토론하고 말해보세요.

기수 문제번호 등록일

 

 

3. 경주 월성 - 사적 제16호  

경주월성

월지 서남편에 있는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왕궁이었으며 사적 제16호이다. 흙과 돌로 쌓은 도성으로 현재 부분적으로 성벽과 건물지가 있다. 이러한 신월성은 경주 시가지를 중심으로 보아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주시 인왕동 449-2번지 등이다.

남천(문천 또는 사천) 북쪽에 접한 낮은 언덕을 연결하고 자연 지세를 최대한 이용해 성벽을 쌓았기 때문에 성곽의 형태가 반월형(사실은 초승달 모양)을 이루고 있다. 동쪽, 서쪽, 북쪽은 낮은 12개의 산봉을 연결하여 쌓았고, 남쪽은 자연 지세를 많이 활용하여 쌓았는데, 지형이 절벽을 이루기 때문에 성

벽의 외부를 손질하는 정도로 쌓았을 것이라 추측되고 있다. 성벽 기저부 까지 남천의 물이 와 닿고 있다.

성안의 전체적인 지세는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으며, 성안 지반의 높이는 성밖보다 약 7m가 높고, 남천을 접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세 성벽은 약간 높은 언덕과 같이 토루가 둘러져 있다. 현재 성벽 중 가장 높은 곳은 국립경주박물관과 연접한 곳인 동남쪽으로 약 10~18m가 된다. 성의 규모는 동서 860m, 남북 250m, 성 전체 둘레는 1841m, 면적은 1830.600m2이다.

월성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은 일제강점기시대와 1979과 1980년에 부분적인 발굴을 하였던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월정교 부근의 성벽을 조사하였는데, 성벽의 너비는 36척(10.9m), 높이는 중앙에서 12척(306m) 내외였다고 한다. 또한 성벽 밑은 김해식 토기를 포함한 철기시대 문화층이 있었다. 1979~1980년에 있었던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발굴은 월지로 통하는 동북문지로 토성의 기단부 석렬과 구조물에 대한 흔적 등이 확인되었다.

원래 월성 안에는 남문과 정문격인 귀정문, 북문, 인화문, 현덕문, 무평문, 준례문 등의 문과 월상루, 망덕루, 명학루, 고루 등의 누각, 왕이 정사를 보던 남당, 신하의 조하를 받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조원전, 양궁, 사량궁, 대궁을 관할하던 새성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터만 추정될 뿐이다.

월성에는 호공과 석탈해, 비담과 염종의 난 때에 김유신과 김춘추가 이곳을 근거지로 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경덕왕과 충담사의 찬기파랑가 등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월성 안에는 경주 석씨의 시조를 모시던 숭신전도 있었으나 1980년 동천동 석탈해왕릉 동남쪽으로 옮겼다. 동쪽의 명활성, 서쪽의 서형산성, 남쪽의 남산신성, 북쪽의 북형산성이 나성의 역할을 하였다. 월성 주위에는 사방으로 해자가 둘러져 있어 성을 호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월성 내부와 해자에 대한 대대적인 발굴이 진행 중에 있어 멀지 않아 그 전모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가 된다.

 

체험학습 과제

1

월성의 사진을 찍고, 월성에 대한 느낌을 말해보세요.

2

월성을 둘러 싼 인공과 자연의 물길이 있는데 이를 무엇이라 하며 왜 만들었을까요?

3

월성에 얽힌 탈해와 호공의 설화에 대하여 설명해보세요.

기수 문제번호 등록일

 

 

4. 경주 석빙고 - 보물 제66호  

석빙고

월성 북쪽 성루 중간 지점에 성루를 자르고 남쪽에 입구를 내었으며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이 경사지게 하여 물을 성 밖으로 배출하도록 설치돼 있는데, 보물 제66호이다. 내부는 동서로 무지개 구조[홍예] 5개를 틀어 올리고, 홍예와 홍예 사이의 천장에는 세 곳에 배기공을 설치하였다.

출입구 높이는 1.8m, 너비 2.0m의 크기로 만들고, 계단을 설치하여 밑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3대 유리왕 때부터 얼음 창고가 있었다고 하였으며, 『삼국사기』에는 지증왕 6년 11월에 유사에게 명하여 얼음을 저장하도록 하였다는 기사가 보인다. 이로 미루어 보면 신라시대에는 일찍부터 얼음을 저장하여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에서도 근래에 얼음저장고로 보이는 유적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월성에 있는 현재의 석빙고에 대해서는 신라시대에 축조한 것을 현재 위치로 옮겼다는 설과 조선시대 축조설로 나눌 수 있다. 신라시대 축조설은 일제강점기시대 일본인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었고, 조선시대 축조설은 1960년대에 고 이화여대 진홍섭교수에 의해 제기되었다. 진홍섭교수는 조선시대에 이곳에 석빙고를 설치한 이유로 첫째, 성 남쪽에 남천이 흐르고 있어 채빙하기에 편하다는 점, 둘째, 성루의 경사를 이용할 수 있었다는 점, 셋째, 전체적인 구조와 설계가 조선시대에 세워진 청도 석빙고, 대구광역시 기상대 내에 있는 석빙고비명, 안동 석빙고, 경남 창녕읍 석빙고 등과 같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축조년대를 알 수 없는 석빙고인 창녕군 영산면 석빙고, 달성군 현풍읍 석빙고 등을 예로 하면서 모두 조선시대로 축조연대를 추정했다. 아울러 경주의 석빙고도 경상북도, 경상남도의 석빙고와 마찬가지로 18세기 전반에 축조되었을 것이라 하였다. 이 석빙고 서쪽에 있는 석빙고 관련 비에 의하면 1738년(영조14년)에 당시 경주 부윤이던 조명겸이 나무로 된 얼음 창고[빙고]를 돌로 된 얼음 창고로 축조하였다는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 석빙고 입구 이맛돌에는 “숭정기원후 재신유 이기 개축(崇貞紀元後再辛酉移基改築)”이라고 쓰여 있어, 4년 뒤에 동쪽으로 100m정도 옮겨 현재 위치에 다시 쌓았음을 알 수 있다. 옮기기 전의 옛 위치는 서쪽에 남아있다.

석빙고

<석빙고 내부 입구 계단>

 

체험학습 과제

1

석빙고 사진을 찍고, 느낌을 말해보세요.

2

경주 석빙고는 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일까요, 아니면 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인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해보세요. 또한 경주 석빙고를 제외한 다른 곳의 석빙고는 어디에 있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석빙고의 구조적 장점에 대하여 아래 도면을 참고하여 토론하고 설명해보세요.


과제그림1

 

 

창의․융합 심화 과제

1

이곳에 있는 ‘얼음 창고[빙고氷庫]’는 돌을 쌓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석빙고(石氷庫, 돌로 된 얼음 창고)’라고 부릅니다. 이곳 석빙고는 신라시대에 만들었을까요? 아니면 조선시대에 만들었을까요?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해보세요.

2

이곳 석빙고는 입구를 남쪽을 향해서 만들었습니다. 입구를 남쪽으로 하였을 때의 장점에 대하여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해보세요.

3

석빙고 위쪽에는 그림에서처럼 세 곳에 환기창이 있습니다. 이들이 필요한 이유를 토론하여 정리하여 기록해보세요.


과제그림1

4

얼음을 쌓을 때, 얼음만 쌓으면 주변 공기와 접촉으로 인해 빨리 녹아서 다음해 여름까지 저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주변의 열을 차단하는 수단으로 어떤 방법을 사용했을까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해보세요.

5

얼음이 녹으면 물이 고이게 됩니다. 얼음이 녹은 물은 어떻게 처리하였는가를 토론하여 정리하여 기록해보세요.

기수 문제번호 등록일

 

 

체험학습 과제

1

동궁과 월지의 사진을 찍고, 월지에 대한 느낌을 말해보세요.

2

월지를 얼마 전까지 “안압지(雁鴨池)”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월지는 인공 연못입니다. 특히 입수구에는 연못의 물 흐름을 고려하여 매우 과학적인 기법을 적용하였는데 어떠한 방법인가요?
또한 동궁과 월지는 어떠한 용도로 사용이 되었을까요?

 

 

창의․융합 심화 과제

1

이곳의 명칭에 들어있는 ‘동궁’이 어떤 의미인지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하세요.

2

경주 동궁과 월지

그림은 월지로 물이 들어오는 부분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장치를 찾아 사진을 찍고, 이 장시의 역할을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하세요.

3

경주 동궁과 월지

그림과 같은 장치를 찾아보세요. 물 속에 잠겨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구멍이 4곳에 뚫려있습니다. 이들 구멍의 역할을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하세요.

4

경주 동궁과 월지

월지의 물이 어떻게 순환되는가를 해설하는 그림입니다. 두 가지 가운데 어느 쪽이 가능성이 큰지를 선택하여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하세요.

5

경주 동궁과 월지

그림과 같은 주사위의 명칭은 무엇일까요? 사각형 면과 삼각형 면이 각각 몇 개씩으로 구성되었는지를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하세요.

6

경주 동궁과 월지

그림은 여름철 월지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런 현상을 무엇이라고 하며, 원인은 무엇인가를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하세요.

기수 문제번호 등록일

 

 

6. 경주 분황사  

성덕대왕신종

국보 제29호로,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사망하고 혜공왕 때인 771년에 완성되었다. 이 종은 봉덕사(奉德寺)에 달았으나 수해로 폐사된 뒤 영묘사(靈廟寺)에 옮겼다가 다시 봉황대에 종각을 짓고 보호하였다. 1915년 8월에 종각과 함께 박물관으로 옮겼고 국립경주박물관이 새로 지어 이사하게 됨에 따라 이 동종도 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 경내로 이전되었다. 일명 봉덕사종 또는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이 동종을 완성하였을 당시는 통일신라의 예술이 각 분야에 걸쳐 극성기를 이루던 시기로서,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이와 같은 우수한 작품이 제작되었다. 특히 이 동종의 명문은 종명(鐘銘)의 효시일 뿐만 아니라 문장면에서도 지극히 뛰어난 것이다. 지은 사람은 신라 혜공왕 때 한림랑급찬(翰林郎級飡)인 김필계(金弼溪)라고도 하고 김필오(金弼奧)라고도 하나 글자가 마멸되어 분명하지는 않다. 종명은 630자로 된 서문(序文)과 200자로 된 명(銘)으로 짜여 있다. 종명의 주제는 성덕왕의 공덕을 종에 담아서 대왕의 공덕을 기리고, 종소리를 통해서 그 공덕이 널리 그리고 영원히 나라의 민중들에게 흘러 퍼지게 해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발원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최대의 거종(巨鐘)으로서 제작 연대가 확실하고 각 부의 양식이 풍요 화려한 동종의 하나이다. 상원사 동종(국보 제36호)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범종을 대표한다.

 

체험학습 과제

1

성덕대왕신종 사진을 찍어 보고, 성덕대왕신종에 대하여 설명해보세요.

2

우리나라와 종과 외국종의 차이점을 설명해보세요.

3

종 위에는 대나무처럼 생긴 음관[음통]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토론하여 기록하여 보세요.

 

 

창의․융합 심화 과제

1

이 종의 이름은 ‘성덕대왕신종’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긴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하세요.

2

이 종의 설명판 오른쪽에 무게를 그림과 같이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하세요.

그

3

서양종과 동양종[한국종, 중국종, 일본종]의 특징적인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하세요.

4

분황사 석탑을 모전석탑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5

그림은 신라종[상원사동종], 중국종, 일본종입니다. 차이점을 3가지 이상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하세요.

모전석탑 주변의 축대 기단

6

신라종 가운데서 성덕대왕신종이 특이한 점을 토론하고 정리하여 기록하세요.

기수 문제번호 등록일

 

 

체험학습 과제

1

신라는 “황금의 나라”라는 말로 표현되듯이 금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금관 앞에서 사진을 찍어 보고, 신라의 순금관은 몇 개이며 금관의 용도에 대하여 설명해보세요.

2

장식보검(보물 제635호)은 삼국시대 무덤에서 출토되는 일반적인 칼과는 그 형태와 문양이 다른데 왜 그럴까요?

그림

3

신라역사관 전시 유물 중 토론을 통하여 가장 감명 깊게 와 닿은 유물을 들고 그 이유를 설명해보세요.

기수 문제번호 등록일

 

 

체험학습 과제

1

황룡사터에서 발굴된 1.8m의 치미 앞에서 사진을 찍고, 한옥건축물에서 치미의 위치와 의미에 대하여 설명해보세요.

2

신라미술관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사람 키 정도 규모의 금동불입상이 있는데, 불국사 아미타금동불좌상 그리고 불국사 비로자나금동불좌상과 더불어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의 하나이다.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을 찾아 사진을 찍어보세요.

3

신라미술관에는 “임신서기석”과 “남산신성비”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각각에 대하여 내용과 그 의미에 대하여 설명해보세요.

기수 문제번호 등록일

 

 

체험학습 과제

1

월지에서 발굴되어 보존처리 된 신라 시대의 배 앞에서 사진을 찍어 보고. 월지관의 전시 유물 중 하나를 골라 설명해보세요.

2

월지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14면체 주사위인 “주령구”를 찾아보세요. 각 면에 새겨진 글자 중 1~2개를 골라 그 뜻을 풀이해보세요.

3

월지에서는 나무 제품들이 썩지 않고 많이 보존되어 발견되었다. 썩지 않고 보존된 이유와 그 중 하나를 골라 어디에 사용된 물건인지 설명해보세요.

기수 문제번호 등록일

 

 

10. 경상북도산림환경연구원 http://www.kbfoa.go.kr/?r=home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은 1907년 4월 한국경영 묘포장으로 출발하여 1910년 경상북도 소속으로 변경되었으며, 1931년에는 경상북도 임업시험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해방 후 1961년에 농촌진흥원 임목양묘장으로 이름이 바뀌고, 1969년에는 경주시 배반동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1993년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소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2008년 현재의 이름으로 다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곳 연구원은 기후변화에 대응한 산림환경조사, 산림병해충의 친환경 방제, 유망 임산물의 소득화 연구, 산림의 효율적인 경영과 보호를 위한 임도 및 사방사업을 수행하는 산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또한 야생화원, 무궁화동산, 산림전시실, 습지생태원 등 오랜 세월 가꾸어 온 아름다운 산림자원을 바탕으로, 해마다 약 30만명 가량이 산림문화를 찾아 즐기는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숲 해설 프로그램과 유아 숲 체험원도 운영하고 있다.

 

체험학습 과제

1

‘경북산림환경연구원’에 습지생태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느낌을 말해보세요.

2

꽃이 피어있는 식물 3 종류의 사진을 찍고, 이름을 검색하여 기록하세요.

3

나무 세 종류를 선택하여 이름을 적고, 잎과 나무줄기의 특징을 기록하세요.

기수 문제번호 등록일